시와수필

오귀순 붙잡고 싶은 순간(오귀순)

webmaster 2016.10.14 17:45 조회 수 : 827

살아오며 속히 지나쳐 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실수 혹은 부끄러움, 아픔과 고통의 시간 등이다. 그런가 하면 지나침이 아까와 붙잡고 싶을 때가 있다. 내 경우엔 딸이 의대를 졸업하던 순간.  갓 태어난 손자 손녀를 품에 안아 보던 때. 함박눈이 내리던 날,조용히 날 응시할 수 있는 사색의 시간. 아기의 보드랍고 작은 손을 잡고 걸어갈 때 등을 꼽을 수 있다. 가평에서 보낸 시간이 그랬다. 붙잡고 싶은 순간들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캄캄한 밤길을 약 두 시간 달렸다. 꼬불꼬불한 숲으로 연결된 길을 따라 산속에 있는 집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확하고 솔잎 냄새가 난다. 진한 솔 향기를 맡으며. 하늘을 바라보니 주먹만큼 커다란 별이 날 반긴다. 가슴이 뜨겁게 설렌다.

 아침이다. 오늘은 살구를 따는 날이라고 했다. 차를 타고 농장으로 가는 길에 주위를 바라본다.  자료에 의하면 경기도 동북부에 위치한 가평군은 토지가 거의 화강암과 편마암으로 되어 있다.  전체 면적의 81%가 산지다. 해발 700- 800미터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끼고 웅장한 맥을 이루고 있다. 계곡을 따라 흐르며 이어지는 가평천은 북한강으로 유입되어 흐른다. 면적은 843킬로 미터. 인구는 약 6만이 넘는다고 한다.

 오른쪽으론 숲과 산, 크고 작은 바위와 돌,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흐르는 계곡과 개천이다. 왼쪽으론 물에 잠겨 파랗게 올라온 벼 모종, 늘어선 과일나무와 꽃들. 마력처럼 내 마음과 눈을 사로잡는다. 지나침이 아깝다. 순간을 붙잡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농장의 주인 되시는 Y씨는 이런 말씀을 들려준다. 이 곳은 쏟아지는 별빛이 그리운 사람. 파란 하늘의 자유를 원하는 사람 들이 갑갑한 도심지를 벗어난 휴양지 혹은 건강을 위해 살고 싶은 곳으로도 꼽힌다. 자신도 10여년 전 원인 모를 병에 시달렸다. 병원에선 이상 없다는 진단만 내려진다. 일상 생활 조차 어려울 때에 이곳으로 들어왔다. 사업가인 그는 금요일까지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주말이면 이곳으로 내려와 농사 짓고 농장에서 흙과 함께 일하고 산에 오르기를 시작했다. 그 후로 완전히 건강을 되 찾았고 지금은 청년처럼 살고 있다고 했다.   

농장에 도착해서 난생처음으로 무릎까지 오는 검은 장화를 신고 챙이 긴 모자를 썼다.  어색한 모습에 거울을 보고 씩 웃었다.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작은 동산으로 올라가니 올망졸망 앙증맞게 달린 살구나무가 보인다.  살구는 살살 따라고 말했지만, 사실 입으로 후- 불어도 떨어질 만큼 익었다. 주고 따고, 시간이 지날 수록 힘이 든다.  허리를 펴고   주위를 둘러본다. 하얀 종이로 이미 싸여있는 배나무를 비롯 사과, 감, 복숭아, 살구 온갖 과실 나무가 다 모인 듯 하다. 그 날의 수확이 상자마다 가득히 채워졌다. 풍년이라며 모두 즐거워한다.  

바람이 분다. 땀을 닦는데 어디선가 뻐꾸기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뻑국^ 더위도 잊고 소리를 따라 가며 귀를 모은다. 문득 그 어린 시절 들려오던 교회 종소리 같다는 생각을 한다. 새 소리가 그리움 처람 가슴 깊숙이 스며든다. 아, 참 좋다.  

저녁이 되고 가족들이 모였다. 오이, 부추, 꺳잎, 국과 밥, 진미다.  밭 에서 따온 상추는 입에서 살살 녹는다. 고기에 싸서 한 입 가득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한마디 하고 와- 웃고, 또 한마디 하고 배꼽을 뺀다. 시원한 계곡의 물과 푸른 숲, 뻐꾸기 소리와 주먹만한 별, 가족의 웃음과 맛난 식탁에서 끝없는 이야기로 이어지던 밤. 지나쳐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붙잡고 싶은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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