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수필

오귀순 가을편지(오귀순)

webmaster 2017.02.12 14:28 조회 수 : 0

아침에 동네 길을 걷는다.  햇살이 쏟아지는 하얀 길.  물들어 가는 단풍잎, 파란 하늘, 스치는 미풍 예쁜 아기 새가 우체통에 앉아 있다. 아! 편지를 받고 싶다. 들여다 보고 가슴에 안아보고 두근거리며 살며시 겉봉을 뜯어낼 편지 아니, 편지를 쓰고 싶다. 이 가을이 주는 소소한 행복을 전하고 싶다.

눈이 커다란 친구는 학창시절에 인기가 많았다. 홀어머니의 손에 자랐고 가난한 그에겐 점심이 없었다. 사 먹기도 어렵고 가지고 올 수도 없는 형편같았다. 가끔 친구의 큰 눈이 먼 하늘을 바라볼 때 나는 슬펐다. 배고픔이라는 늪지대에서 언제나 벗어날까 허기진 그늘이 있었으나    빼어난 생김새 위에 높은 성적은 학교의 자랑이고 선생님과 학우들에게 명망을 사기에 충분했다.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이 되었다. 그곳에서 멋진 사람을 만나 축복 속에 결혼했다.  그 후로 친구들은 각자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 또한 미국으로 건너와 동분서주 살았다.   

어느 해 던가   한국 방문 때 친구들을 수소문해서 덕수궁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외모는 중년이나 아직도 분홍빛 귀여움이 남아있다. 우린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이 웃고 떠들며 지나간 세월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난 누구보다도 눈이 큰 친구의 삶이 궁금했다.  친구들이 자리를 뜨고 그녀와 단둘이 남았다. 그제야 입을 연다. 피곤한 삶을 살아왔다고 했다. 결혼한 후부터  시댁 간섭이 심하고 무엇보다 문벌 가의 집안이라는 이유로 학력이나 재산,가정사 등을 앞세워 비교 당하며 살았다.  하나 둘, 가슴속에 있는 한을 풀어 놓으며 그녀는 흐느끼고 있었다. 왜 우리의 삶이란 이토록 혹독할까 어찌 아직도 눈물은 마르지 않는가 울분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친구에게,

오늘은 생각이 쌓인 가을 길을 걸었다. 가을은  열매 뒤에 있는 인내를,  완성 뒤에 있는 고통을,  수확 뒤에 있는 땀 방울을  보게 하기에 숭고한 계절이란 생각을 한다. 가을은 눈물로 만들어진다 했던가. 깊은 사색의 빛깔이 가득한 세상이다. 애조를 띤 글썽이는 눈을 가진 네가 생각난다.

지금쯤 너는 어떤 여인이 되어 있을까. 주름진 할머니? 혼자 웃었다. 세월의 흐름이 있으니 그 이름도 행복이다. 넌 능력이 있는 여인이니 지금쯤  명성이라는 후광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 또한 멋진 일이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아이들의 어머니가 된   평범함은 자랑할만하다. 넌 모든  이름에 걸맞는 아름다운 여인. 어떻게 지내니?  학창시절에 넌 장미꽃 같았다. 빨갛고 탐스럽고 열정이 넘치는 사람. 우리 모두의 시선이 네게 머무르곤 했었지.

장미는 심어진 자리가 어디든 만나는 이들에게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며 마음을 전한다. 아니, 네 눈빛처럼 깊고 맑은 진실을 호소하는지도 모른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네 이름을 적어본다. 커다란 눈,착한 마음이 보인다. 친구야, 어린 시절 우리들의 책갈피에는 단풍잎, 네 잎 클로버, 노랑, 빨강 꽃잎들을 끼어 놓았었지. 어른이 된 현실의 책갈피에는 눈물, 아픔, 슬픔이 끼어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다시 보면 그 안에 아주 많은 웃음, 행복, 즐거움을 읽을 수 있게 되지. 친구야, 아직도 사랑할 수 있는 삶이 있음에 감사하자. 오늘은 보너스로 받은 시간. 순간을 감격하며 살자. 희망의 푸른 빛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예쁜 엽서에 손으로 꼼꼼히 적어 우체통에 넣었다. 편지를 받아 들고 기뻐하는 친구를 상상 해본다. 귀여운 예쁜새 우체통에 앉아 노래를 부르진 않을까. 아! 이 가을엔 편지를 받고 싶다. 그리고 편지를 또 띄우고 싶다. 고운 단풍잎 같은 사랑을 듬뿍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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