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수필

오귀순 새해엔 (오귀순)

webmaster 2017.02.12 14:47 조회 수 : 12

연말에 어느 분이 여러가지 선물을 한 번에 가져오셨다. 사과, 배 한 박스씩, 예쁜 포장지에 싸인 내용을 알 수 없는 물건, 달력, 그리고 카드라고 생각되는 봉투. 그 많은 종류를 한번에 받고 제일 먼저 손이 간 것은 편지 봉투다. 뜯어보니 인쇄되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보낸 업소의 연하장이었다. 읽는 둥 마는 둥 하고 그냥 옆으로 밀어 버렸다. 내심 손편지를 기대한 모양이다.

갑자기 잊어버렸던 10여 년 전 기억이 떠오른다. 우체함엔 고지서만 가득하고 필요 없는 광고지만 수북이 쌓임을 보며 삶이 메말라 간다고 생각되었다. 안부를 묻는 수단은 모두 전화가 대신하니 우편함은 열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전화란 바다 표면에서 찰랑거리는 물결이라면, 편지는 깊고 깊은 수면 속에 저장된 보화 같은 것이라고 난 생각했다. 편지 쓰기를 시작했다. 병석에 누워계신 분께 얼마나 힘이 드시냐고 속히 건강해지시길 바란다고 했고. 가족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고 눈물이 마르지 않는 분껜 아픈 마음을 전했다. 싱글 맘들께도 아이들 자라고 있으니 힘내자 적어 보냈고, 결혼 적령기를 놓치고 근심하는 아가씨에겐 잘 될 것이라고, 딸네 가정에서 힘겹게 살아가시는 할머니껜 사랑한다고 전했다. 비가 오면 생각난다고 눈이 오면 그립다고 서로 헤어져야 할 땐 추억 속에 살겠노라고 했다.      

내 편지가 어느 분께 작은 용기가 된다면 글이 슬픔을 당한 가족에게 위로가 되고 위축된 마음을 일으켜 줄 수 있다면…그런 생각이었다. 그 후 아주 많은 마음을 만났다. 내용이 힘이 되기에 잊지 않으려 가방에 늘 넣고 다니신다는 분, 외로울 때 한 번씩 꺼내 읽는다는 분, 어느 분은 편지를 냉장고에 붙여 놓고 해 질 때까지 읽고 글이 지워질까 두려워 카피를 떠서 달아 놓았다고 하셨다. 미안할 정도로 고마워 하셨다.

밉든 곱든, 성격이 팍팍하든 부드럽든 편지를 받을 분으로 생각하고 이름을 써 놓으면 친근해 지고 따스한 정이 전류처럼 흘러감을 느꼈다. 누구나 지닌 장점과 서로 다른 고귀한 면이 생각나고 내가 바라보아야 할 숭고한 아름다움이 보였다. 편지는 사랑의 고리처럼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끈처럼 생각되었다. 어렵지만 사랑하던 편지 쓰기. 이사 오면서 생각에서 지워져 버렸었다. 오늘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왜 그렇게 많은 선물 가운데서 카드에 마음이 머물렀는지. 잘 있냐/ 보고 싶다/ 건강한 새해/ 가 되길 바란다는 몇 마디의 글이라도 개인적인 내용을 읽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도 많이 외로운 모양이다.

아주 먼 곳 가까운 곳, 여기저기 모두가 외로움을 호소한다. 이 세상에 사는 마음들은 모두 한기를 느끼는 듯하다.  손발이 차가우면 장갑을 끼고 털신을 신으면 되고 몸이 추우면 히터를 올리고 코트를 입으면 된다. 하지만 마음이 추우면 무엇으로 따스하게 할 수가 있을까. 난 편지를 생각한다.  눈물을 잠시 그치도록, 고단한 마음이 잠시 쉬어가도록, 대단한 성취를 이루진 못해도 오늘 살아 있음은 축복이요 은혜요 더 없는 감사의 순간이라고 지친 마음들을 응원해 주고 싶다. 아니 쓰면서 내가 용기를 얻을 것이다.

오랜 세월 잊고 지내던 편지, 2017년도엔  매주 한 통씩 쓰겠다.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기에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한 장의 편지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서너 달이 걸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분의 인생을 찾아가서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선사하듯 새해엔 펜과 종이에 사랑을 담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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