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수필

나는 중학교 때부터 친형제같이 지나는 친구들이 있다. 2학년이 된 첫날에 키에 따라 번호를 매겨 주시는 담임 선생님의 눈을 속이고자 운동화 속의 발꿈치를 치켜들고 같이 짝이 되고 싶은 나보다 조금 큰 S의 뒤에서 마음을 졸이고 서 있었다. 그런 나를 벌써 눈치챈 담임 선생님은 야단 대신에 “그렇게 좋으냐” 하고 픽 웃으며 우리가 원하는 데로 번호를 주셨다. 앞에 앉은 두 친구와도 친해져서 우리는 언제나 붙어 다니며 학교생활이 마냥 즐거웠다. 그 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몇 명의 잊지 못할 친구를 더 얻어 막역(莫逆)함이 없이 종례가 끝나면 모두 모여 덕수궁 뒷담을 끼고 걸으며 온 세상이 우리의 것처럼 떠들어대고 웃음을 잃지 않는 활기찬 십 대의 특권을 누렸다. 그때 담임 선생님은 철없는 학생들의 마음을 어떻게 아시고 관용을 베풀어 주셨을까. 돌이켜보며 우리네 삶에서 다른 사람과의 대화나 감정을 잘 이해하는지 생각해본다.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틈틈이 같이 모여 연애 고백, 어린애 같다는 새신랑 얘기, 어려운 시집살이나 까다로운 직장 생활의 문제 등을 허물없이 털어놓고 모든 것이 내 일인 것처럼 각가지 즐거움이나 고민을 껴안고 지냈었다. 정말로 이 친구들은 마음이 편안하고 든든하며 조건 없이 서로를 받아드리고 인정하며 무슨 말을 해도 잘도 알아듣는다. 요새도 전화나 카카오로 그들과 연락하면 몇 마디 나누지 않아도 따뜻하고 정겨운 말씨가 큰 언니처럼 내 마음을 감싸준다. 이 친구들은 무슨 마술을 쓰길래 이처럼 서로 소통이 잘 되는지 놀랍다.  

 

은퇴 후 많은 사람을 새로 만났다. 몇 십 년을 이 미국땅에서 살아도 영어론 소통이 힘들 때가 많다. 우리말도 서투를 때가 있지만 내 나라말이 훨씬 수월하고 영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우리 고유의 말을 하며 서로 어울려 살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도 어떤 때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말을 왜곡하고 뜻하지 않은 오해로 가슴앓이를 겪어야 할 때가 있다. 얼마 전 어느 친구에게 내가 돕고자 한 말을 제대로 내 의도를 전하지 못했는지 갑자기 상대방이 화를 내고 섭섭하다는 말로 쏘아붙이는데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서 쓴웃음으로 스쳐버렸다. 옆에서 들었던 다른 분도 깜짝 놀라 설명을 해도 이미 서로의 마음에는 상처의 구렁이 생기고 말았다. 살면서 이런 뜻밖의 경험도 하게 되는구나 생각하며 소통이란 말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어릴 적부터 사귄 친구들과 삶에 경험을 쌓은 후에 만난 분들과의 사이에 마음이 통하는 길은 다를까.

 

소통이란 말 그대로라면 막힌 것을 통하게 한다는 것이다. 부엌 싱크대가 막혀서 풀럼어가 와서 뚫었다는 말도 듣지만, 때로는 “아이고 속상해, 나는 말문이 막혀서 그 사람하고는 도무지 통하지 않아”하는 하소연도 듣는다. 언어를 가지고 의사소통을 하고 자신의 감정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그렇지만 말이 안 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로의 생각과 의견이 다를 뿐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문을 닫아버리고 성급하게 내 뜻대로 해석하고 판단하기 때문일 줄도 모른다. 마음의 문이 열려있으면 서로의 대화가 쉽게 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말의 소통은 반은 말하는 사람으로부터, 나머지 반은 듣는 사람에 의해서 온전히 이루어진다고 한다. 내 생각이나 감정만 내 세우고 서로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상호 간에 오해라는 구렁이 생기고 그 가려 놓인 구렁은 용서가 없이는 점점 넓어져 건너가기 힘들게 될 것이다. 내 말을 듣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드릴지 생각해 보며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잘 이해했는지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두들겨 보아야겠다. 또한, 내 마음을 비워야 내가 처한 삶의 광장에서 주위 사람들과 인격적인 나눔을 갖고 열린 마음으로 즐겁게 소통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비스 링크

X
Login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

아이디가 없으신 분은

회원가입 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