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수필

수년 전 애틀랜타로 이사 오려고 집을 장만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 이곳저곳 쫓아다닐 때 나는 여러 집을 구경하기가 힘들었지만, 골목마다 하늘에 달듯이 시원스럽게 쭉쭉 뻗어 올라간 소나무가 가슴을 활짝 펴주는 듯했다. 크고 작은 소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동네 공원을 걷고 싶은 충동으로 찬사를 보냈더니 뜻밖에 중개인이 내 말을 가로채고 소나무 꽃가루 때문에 견디기가 힘들다고 소나무를 모두 잘라버리면 좋겠다고 화를 내듯 불평을 털어놓고 재채기를 연발한다.

 

멋쩍고 미안한 마음으로 창밖을 내다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힐톤 헤드(Hilton Head) 섬으로 놀러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북쪽에 살 때는 구름 낀 날씨가 많았고 4월 중순에도 폭설이 내렸는데 화사한 햇빛을 받고 호텔 입구로 가는 길 양옆에 줄지은 소나무들이 반짝이는 푸르른 솔잎들을 과시하며 나를 반겨주었다. 아이들과 환성을 지르며 여기저기 깔린 크고 탐스러운 솔방울을 한 소쿠리 주워 담아 왔다. 아이들 아빠는 그런 것을 줍고 다니냐고 웃었지만 탄탄한 솔방울들이 그해 성탄에 솔가지로 만든 화환에 예쁘게 꽂혀 벽난로를 장식해 주었고 몇 해 동안 우리와 같이 지냈다.

 

애틀랜타의 봄에는 이곳저곳에서 자랑스럽게 활짝 핀 연분홍 벚꽃과 새로 돋아난 가지각색의 꽃들을 껴안고 있는 소나무들이 서로 어울려 나를 불러낸다. 운전하면서도 사진을 찍어 멀리 아프리카 더운 곳에서 선교하며 고생하는 친구에게 보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오늘 아침 집을 나오기 전에 텔레비전에서 나온 일기예보에서는 꽃가루 수치 (pollen count)가 최고로 높다고 알레르기(allergy)나 천식이 있는 사람은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꽃가루에 둔해서인지 자동차 유리창에 쌓인 연두색 소나무 꽃가루를 닦아낼 뿐 봄의 동행자로 생각하니 재채기와 눈물로 고생하는 분들께 그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다.

 

소나무는 대표적인 상록수로 관상용으로 많이 사용되고, 고금을 막론하고 그림이나 글의 주요 대상이 되곤 한다. 꿋꿋이 뻗어 올라가 항상 푸르게 서 있는 모습은 절개와 의지의 표징으로 정신적인 지표가 되기도 했다. 나무는 잘 썩지 않아서 목재로 사용되고 특히 궁궐이나 사찰에 많이 쓰인다. 금강소나무는 최상급의 목재로 숭례문 등 문화재 수리 때 사용된다고 한다. 솔잎은 소화불량이나 강장제로 이용되고 송편을 찔 때 많이 쓰던 추억도 새롭다. 송진의 추출물은 여러 가지 의약품이나 화학품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소나무의 품종이 많은데 한국에서는 어떤 소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서 보호한다고 들었다. 애틀랜타에서 많이 사용되는 소나무 짚은 땅이 마르고 깎아 내려가는 것을 방지하고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해서 정원 가꾸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풍매화인 소나무는 연둣빛 고운 꽃가루를 바람에 날려 나비나 벌이 없이도 번식된다. 봄철 알레르기의 주요 원인으로 생각되지만, 알고 보면 소나무 꽃가루는 우리 실생활에서 다양하게 쓰인다. 꿀을 섞어 만든 다식은 맛이 특이해 궁중 음식이었고 향긋한 솔향이 좋아 국수나 술에 섞어 먹거나 차로도 마시며 기운을 돋게 하고 피를 멎게 하는 약재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건강에 좋다는 고급 음식인 송이버섯은 소나무 숲속에서 자라는 자연산이라니 소나무 꽃가루의 공로가 크다.

 

우리 주위에는 각가지 종류의 수목뿐 아니라 어울려 살아야 하는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많다. 그 상대가 어떻든 이해하기 전에 자신만을 생각하고 고개를 돌리고 무시하지나 않는지 생각해 본다. 내게 힘들고 까다로운 도전이라도 참고 이겨내면 소나무 꽃가루의 가치를 알고 그 존재를 받아들이듯 우리도 언젠가는 모두를 인정하고 함께 융화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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